옥토버페스트의 추억 2 다시 쓰는 리얼여행기

Welcome to Octoberfest  2

아침부터 비틀비틀, 옥토버페스트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곳은 뮌헨 역에서 걸어서 20여분. 전철을 이용할 경우 ‘Theresienwise'역에 내리면 곧바로 축제장과 연결된다.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여행객이 귀띔해 준 말이 떠올랐다. “오전에 자리를 잡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대요.” 브라질의 리우 축제,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불리는 데다 매년 6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모여든다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듯했다. 1810년 왕족의 결혼식 직후 시내의 성문 앞에서 성대한 파티를 벌인 것에서 유래된 옥토버페스트는 현재 호프브로이, 뢰벤브로이, 아우구스티너 등 바이에른 지방의 유명 맥주 양조회사들이 모두 참가한다. 매년 9월말에 시작해서 16일간 계속되는 축제기간 동안 약 600만 명의 사람들이 700만 리터의 맥주를 퍼마시고, 52만 마리의 통닭을 뜯어먹고, 4만kg의 생선과 6만개의 족발을 소비한다. 16일 동안 관광객들이 푸는 돈은 약 450만 유로,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7650억 원이나 된다. 그러니까 하룻밤에 약 470억 원의 어마어마한 돈을 술값으로 쓰는 셈이다.

여행객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옥토버페스트로 향하는 거리에는 독일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로 넘쳐 났다. 축구장보다 몇 배는 큰 규모로 펼쳐진 축제장도 사람들로 제법 북적였다. 거대한 강당 크기의 천막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한국의 지방 유원지에서나 볼 수 있는 조악한 놀이 기구들도 눈에 띄었다. 고등어와 통닭을 작대기에 꽂고, 모래 더미 위에서 활활 굽는 광경은 매우 흥미로웠다. 거대한 맥주 부스를 이루고 있는, 축제장의 외관은 통닭, 학센, 고등어, 빵 등 맥주 안주거리로 넘쳐났다.

우리는 축제장 거의 끝에 위치한 ‘PAULANER' 맥주 부스로 들어갔다. 넓은 홀이 한 눈에 들어왔다. 홀 한가운데 설치된 무대 위에선 전통악단이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손님들은 벌써 홀의 절반을 채우고 있었다. 안젤리나 졸리를 연상케 하는, 뇌쇄적인 눈빛을 가진 종업원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겠다고 찾아온 동양인 커플이 신기한지 우리 주위를 맴돌며 말을 시켰다.

“벌써 술 마시려고? 내가 너희라면 술 안 마실 거야.”

자세히 보니 그녀의 눈은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 되어있었다. 분명 어젯밤에도 퍼마신 게 분명해 보였다.

“왜 그래? 너도 어제 밤에 술 많이 마셨잖아.”

“하하. 나는 술 절대로 안 마셔.”

졸리는 웃으면서 대꾸했지만, 피곤한 듯 연신 하품을 해댔다. 우리는 졸리에게 맥주와 독일식 족발인 학센을 주문했다. 역시 맥주의 나라 독일답게 맥주잔은 고를 것도 없이 무조건 1000㏄. 학센은 11시부터 가능하니 준비되면 갖다 준다고 했다.

잠시 후 졸리는 무거운 맥주잔을 양손에 한 아름 들고 나타나더니, 맥주 두 잔을 놓고는 바쁜 듯 다른 테이블로 사라졌다. 하긴 저렇게 하루에도 수천 잔씩 맥주잔을 날랐으니, 졸리가 피곤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맥주는 흑맥주가 아닌데도 아주 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코펜하겐에서 칼스버그를, 더블린에서 기네스 맥주를 마셔본 사람으로서 증언하건대, 독일 맥주는 ‘최고’였다. ‘죽인다’라는 센 표현이 모자랄 정도였다. 오죽하면 맥주 하나를 가지고, 세계 3대 축제의 주인이 되었을까. 우리는 부러움 반, 한탄 반으로 독일 맥주 예찬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 생맥주는 왜 이런 맛을 못내는 걸까?”

“너무 산업화, 규격화되어서 그렇지 뭐. 독일은 지역마다 전통방식 그대로 맥주를 만든다잖아.”

독일 맥주가 맛있는 이유에 대해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책 <총, 균, 쇠>에서 이렇게 밝혔다. 독일을 갈 일이 있으면 빈 트렁크를 하나씩 가지고 가, 거기에 맥주를 한 가득 싣고 올 정도로 독일 맥주 애호가인 그는 독일 맥주의 경쟁력이 바로 ‘세계화를 배제한 철저한 지역화’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가 자국 맥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맥주 제조의 기준을 전통적 제조방식으로 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지역의 맥주산업이 보존되어 주민들은 자기 지역의 질 높고 신선한 맥주를 모두 소비한다. 행여 외국 맥주가 들어오더라도 독일 맥주의 맛이 워낙 탁월하고 그 입맛에 길들여져 독일 소비자들은 다른 맥주에 대해서는 맥주 취급을 안 해버린다. 지역의 맥주는 수출도 안 될 뿐더러 외국 맥주의 수입도 잘 안 된다. 다국적기업의 맥주는 독일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러한 독일의 맥주 문화에도 세계화의 기운이 조금씩 침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런던에 있을 때, <런던타임스>에 실린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제목이 ‘중국산이 점령한 옥토버페스트’였다. 옥토버페스트의 참가자들은 원래 바이에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가죽 수공예 제품을 입는 것이 전통인데, 최근에는 저렴한 중국산 기성제품이 대거 들어와 지역의 수공예업자들이 모두 고사위기에 몰렸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는 세계화가 어떻게 전통문화를 무너뜨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앞으로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거의 모든 수공업자들은 사라질 것이며, 그들은 단지 문헌을 통해 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백 년을 이어온 전통 축제도 조금씩 변해 나중에는 매우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수백 년이 지나도 맥주 맛은 안 변할 거야, 그치?”

 이미리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그렇겠지. 미각이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보수적이라니까.” 


잠시 후 통닭처럼 고소하게 구워진 학센이 안주로 나왔다. 달콤쌉싸름한 맥주에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쫄깃쫄깃한 안주. 거의 밤을 새운 데다, 빈속에 마시는 아침술이었다. 겨우 반잔 정도 마셨을 뿐인데, 나는 갑자기 세상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워 보였고,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학센의 맛도 맛이지만, 그건 내가 서서히 취해가고 있다는 확실한 물증이기도 했다.

“얼굴 좀 봐. 엄청 빨개. 그거 마시고 벌써 취한 거야?”

이미리는 불과 몇 분 새 얼굴색이 변한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 물었다.

“인생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안 그래?”

“뭐야. 취했군, 취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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