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뮌헨으로 가는 야간열차는 여러 개의 침대가 놓인 ‘쿠셋’이었다. 사진에서만 보았던 쿠셋을 실제로 마주하자 입에서 절망적인 감탄사가 먼저 터져 나왔다.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좁았고, 침대도 사진에서 본 4개가 아니라 무려 6개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옥토버페스트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 3층 침대가 나란히 있는 6인용 쿠셋을 타게 된 모양이었다. 갑자기 극도의 폐소공포증이 몰려왔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무려 6명을 2열종대로 닭장 속 닭 가두듯 집어넣다니! 교도소보다 더한 효율주의의 극치가 아닐 수 없었다. 몸을 뒤척일 수도 없이 빼곡히 들어찬 공간, 그중 맨 위 칸에 누울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혀 왔다. 나는 남편에게 울부짖었다.
“여기서 열두 시간을 누워 있으라고? 천장이 내 코앞에 닿을락 말락 하는데!”
“그러게. 이럴 바엔 차라리 일반 좌석이 낫겠어.”
같은 쿠셋에 탑승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기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수염을 짙게 기른 아저씨 셋이 아래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또래로 보이는 한국 여자 한 명이 중간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3층 침대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나를 진정시킨 후 남편도 건너편 침대에 나처럼 천장을 50㎝ 코앞에 두고 나란히 누웠다.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기차소리는 좁은 객실을 집어삼키려는 듯 크게 울려 퍼졌다. 불은 다 꺼져 실내는 깜깜했고, 다른 여행객들은 이미 잠을 청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움직이면 혼나는 아이마냥, 꼼짝 않고 누워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문득 쿠셋에서는 소지품을 조심하란 말이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 기차를 놓칠까봐 가슴을 엄청 졸인데다가, 이렇게 천장을 코앞까지 마주하니 자꾸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왔다.
‘이러다 호흡 곤란이 오는 건 아닐까?’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물리적 환경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남편과 화해라도 해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남편에게 말이라도 붙이고 싶었지만, 행여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그럴 수도 없었다. 서로 안을 수도 없는 이 비극적 상황에서 우리가 택한 화해의 방식은 결국 손을 잡는 것밖에 없었다. 우리는 팔을 길게 늘어뜨리고 두 손을 꼭 맞잡았다. 1층과 2층에 누운 사람들이 우리를 올려다봤을 때는 눈꼴 시린 ‘꼴값’이었겠지만 우리에겐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와 윤여옥이 철조망을 앞에 두고 나눈 키스와도 같이 절박한 것이었다. 마치 맞잡은 두 손이 ‘제발 우리 사랑하게 해 주세요!’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처럼.
왜 우리는 옥토버페스트로 방향을 틀어 이 상황을 자처하고 하고 있는 것일까. 뮌헨 옥토버페스트는 당초 여행 코스는 아니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세계적 축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곳을 가기 위해선 진로변경, 추가 비용 문제, 스케줄 변경 등 꼬이는 게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 벨기에에서 파리를 거쳐 바로 스페인으로 갈 생각이었다. 사실 남편과 나는 “별것 있을까? 그래 봤자 유럽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맥주 마시는 거잖아.”라며 ‘안 가도 그만’이라는 입장을 표하곤 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만난 여행자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봐야 할 축제래요”, “양키들은 거기 가려고 1년 전부터 예약하는 걸요.”, “저는 그거 보려고 유럽 왔어요” 등등 천편일색 찬탄을 늘어놓는 통에 팔랑 귀를 가진 나는 몇 번이고 마음이 흔들렸다.
“안 가면 후회하겠지?”
“언제는 또 별 거 아니라며? 몰라, 당신이 결정해.”
남편은 나의 변덕에 지쳐있었다.
“그럼 운명에 맡기자. 뮌헨으로 가는 열차가 있으면 가고, 없으면 안 가는 걸로!”
‘양키들은 1년 전에 예약한다’는 이 축제를 단 며칠 앞둔, 목전에 합류하려고 하니 막막할 수밖에. 숙소는 호텔에서 민박집에 이르기까지 축제 기간 내 모두 예약이 끝난 상태였고, 뮌헨을 벗어난 외곽 지역에 여남은 방이 있었지만 그조차 숙박료를 평소의 3배에서 5배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그쪽이야 말로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는 똥배짱 장사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파리에서 뮌헨으로 가는 야간열차 표(아마 누군가 급박하게 열차 예약 취소를 한 게 분명해 보였다.)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브뤼셀에서 파리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3박을 한 다음, 뮌헨으로 가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대신 숙소를 잡을 수 없었기에 뮌헨 행은 어쩔 수 없이 무박이었다. 옥토버페스트를 당일치기로 숨 가쁘게 둘러보고, 그 날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넘어가자는 무박3일의 일정이 우리의 유일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즐겁게 가자. 어떻게든 잠이 들면, 내일이 올 거야.’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러자 어느새 규칙적으로 들리던 바퀴소리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역무원이 들어와 여권을 주면서 우리를 깨웠다. 아래를 보니 다른 사람들은 새벽에 내렸는지 어제는 정신이 없어 인사도 못했던 한국인 여자밖에 없었다. 이미 얼굴 화장까지 마친 그녀는 무려 한 달의 휴가를 받고 홀로 유럽여행 중이었다.
“한 달이라고요? 정말 유능하신가 봐요. 회사에서 그렇게 휴가를 주게.”
“10년을 몸 바쳐 일했더니 한 달 짜리 휴가를 주네요.”
“대단하십니다. 저희는 둘다 직장 그만두고 왔어요.”
그녀의 말이 안쓰러우면서도, 행여 우리가 ‘루저’는 아닐까하는 걱정이 아주 잠깐 자동반사적으로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습관처럼 자신을 누군가에게 비교하게 되는 경쟁적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주체적이니까.
잠시 후 기차가 뮌헨역에 도착했다.
옥토버페스트의 뜨거운 열기는 도착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감지되었다.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 각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기차에서 내리고 있었고, 대합실 옆 스타벅스에는 어젯밤을 치열하게 보냈으리라 짐작되는 배낭족들이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침낭을 목 끝까지 덮고 잠을 자고 있는 여자 배낭족도 보였다. 그들을 보자 나도 모르게 흥이 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뮌헨 역을 가득 메우고 있는 울트라 슈퍼 사이즈의 소시지와 반질반질한 프레첼은 독일에 대한 나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
“와, 독일인은 아침부터 거하게 먹는구나!”
“완전 소시지 천국이야, 저것 좀 봐. 소시지 크기가 1m는 되겠어!”
“옥토버페스트의 안주가 기대되는 걸.”
우리는 감탄 아닌 감탄을 내지르며 라커에 짐을 맡겼다. 이 역시 운이 따랐다. 라커가 모두 꽉 차 있어서 황망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우리 바로 앞에서 자신의 짐을 되찾아간 것이다. 남편은 매우 기뻐하면서 처음 보는 그에게 말을 붙였다.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하하.”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재치 있게 한 마디 했다.
“기다리지 말고, 나한테 전화하지 그랬어요?”
우리는 한껏 들뜬 기분으로 옥토버페스트로 향했다.






덧글
알리야 2009/08/13 18:25 # 답글
10월에 여행갈 곳을 찾다가 옥토버페스트가 4일까지라기에 비행기표예약했는데이렇게 글보고 있으니까 왠지 설레이는거 같아요 ㅋ
전 대책없이 숙소 예약도 안했는데 ㅋㅋ
다음 이야기도 기대할께요 :)
아임이미리 2009/08/14 16:07 #
숙소가 너무 비싸더라구요. 한국 민박집은 좀 싸다고 하던데, 저희는 그마저도 못구했지요.가서 한국사람들과 어울리시는 게 좋을 듯해요. 유럽여행 카페 같은데 보면 옥토버 번개 같은 거 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