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어느 아시안 마네킹에 대한 단상 다시 쓰는 리얼여행기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어느 옷가게의 DP. 금발머리의 백인, 갈색머리의 라틴계, 그리고 검은 머리의 동양계 마네킹이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여러 상점이 줄지어 서있는 의류상가 같은 곳이었는데, '멍' 때리는 듯한(!) 신비한 눈빛으로 한국인과 똑같은 얼굴을 한 동양인 마네킹에 눈길이 멈췄다. 한국에서는 같은 아시안을 마네킹 모델로 쓰지 않는다. 큰 코의 금발,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늘씬한 몸매의 서구형 마네킹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미적 조건'이자 우리 시대의 욕망이기에.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 옷가게가 들어선 동네는 금발의 스웨덴인, 라틴계의 스웨덴인, 그리고 아시아계의 스웨덴인이 어우러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 동네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금발들이 있었고, 또 그만큼의 스페인인계, 그리고 아시안들이 있었다. 이 이방인의 나라에서 만난 너무도 생생하게 생긴 저 마네킹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는 혼란스러운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얼마전 ebs에서 방송된 <오광록의 노르웨이 기행>을 뒤늦게 찾아봤다.  한국이름이 '순이(Suni)'라고 자기를 소개한 어느 노르웨이인 통역자가 오광록의 여행에 함께했는데, 그녀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한다고 했고 한국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했다. 아마도 박노자의 제자인 듯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노르웨이, 그곳에도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웨덴도 마찬가지이다. 스웨덴에도 한국학과가 있고, 그들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한국에 대해 잘 안다. 그들은 왜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외대에 스칸디나비어학과가 있긴 하지만, 그곳은 스웨덴학과도, 노르웨이학과도, 덴마크학과도 아니다. 언어 위주의 공부를 하는 스칸디나비어학일 뿐이다. 궁금했다. 우리와 교류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우리는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데, 왜 그들은 '한국학'이라는 것을 배우며,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할까? 진보신당 대표인 심상정이 쓴 <당당한 아름다움>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2001년 스웨덴 금속노조의 초청으로 대의원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스웨덴을 방문했는데, 당시의 일화를 이렇게 전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비행기의 옆 자리에 칠순이 넘은 노부부가 생후 6~7개월 돼 보이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입양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 순간 도덕적 자괴감 같은 게 스쳐 갔다. (중략) 스웨덴 체류기간 내내 나는 비행기에서 만난 그 아이의 눈망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통역을 맡고 있던 스톡홀름 대학 한국학 교수의 도움을 얻어 이미 청년으로 성장한 입양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핏덩이로 입양돼 온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어를 잘했다. 그들을 위해 대학에 학국학을 개설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했다. 모국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가고 싶은데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불편하게 생각할까봐 망설여진다고 했다. 그들은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반응을 기다렸지만 딱히 그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에게 먼 나라. 하지만 그곳에는 한국에 대해 간절히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 심상정이 만났던 저 '장성'한 입양'아'들도 그렇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써 스웨덴에서 화제가 된 한국인 입양아 '아스트리드 트롯치'도 그러하며,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라는 소설로 노르웨이의 저명한 문학상을 받은 쉰네 순 뢰에스(한국이름 지선)도 그렇다. 그들은 한국을 알고 싶어한다. 왜냐면. 그곳은 자신을 버렸지만, 자신이 태어난 어머니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입양아들을 위해, 그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학과를 개설해준 북유럽의 나라들의 진정한 복지정신에 감동한 나는,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얼마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주인공인 수잔 브링크가 향년 46세로 스웨덴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스웨덴으로 입양 후 이방인으로서 모진 차별과 학대를 당하고 미혼모르서의 힘든 삶을 감내했던 그녀는 훗날 종교를 통해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생전에 발표한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그녀는 한국이 이제는 국제 입양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우선 외모 때문에 매일 일상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스웨덴으로 입양된 사람들의 실업률이 50%이고 자살률은 스웨덴 평균의 5배가 넘는다. 개인적으로 평생 고통스러운 이방인으로 살게 하고 국가적으로는 큰 손실을 안겨주는 국외입양을 중단해야 한다."



이방인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명동거리에서 한번쯤 봤음 직한, 저 신비한 눈빛을 가진 마네킹.

그녀가 스웨덴 어느 거리에서 내게 던진 화두였다.


_by 2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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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BAR_TENDER 2009/03/12 04:09 # 답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달에 핀란드와 스웨덴에 자동차여행을 갈 계획인데.
    가기전에 좋은 글을 읽고 한 번쯤 생각해보고 갈 수 있겠습니다.
  • 아임이미리 2009/03/12 15:34 # 답글

    핀란드는 저희도 못가봤는데, 아기자기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보라고 하더군요.
    핀란드는 <카모메 식당>, 스웨덴은 <렛미인>이 떠오르는데,
    지금쯤 스웨덴의 기후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곧 백야가 시작된다는데,
    혹 경험하시게 되면 블로그에 올려주세요.
  • moksha 2009/05/14 06:23 # 삭제 답글

    어디에 연락을 남길까 찾다가 스웨덴 글이 있길래 여기에 남겨요.
    사진 몇 장 보내려고 했는데 반송이 됐어요.
    메일 한번 보내주세요.
    kim.moosung@gmail.com <= 여기로요...

    참고로 마네킹 사진은 태국인 일거라는...^^
    여기 태국 이민자들 엄청 많거든요...
    그리고 제가 사는 곳에도 한국에서 입양온 여성이 한 명 있어요.
    결혼해서 자식도 있는데, 이곳 친구의 소개로 잠시 인사를 했죠.

    6월 1일에 귀국합니다.
    돼지 인플루엔자 가득 담긴 삼겹살에 그리운 소주 한 잔 하면서 스웨덴 얘기 많이 해봐요...^^
  • TomCat 2009/09/09 22:0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수잔이 죽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네요.
  • ㅇㄴ 2009/09/25 00:10 # 삭제 답글

    근데 마네킹 참 잘 만들었네요. 서울에서는 저렇게 생긴 마네킹은 볼 수 없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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