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버페스트의 추억 3

Welcome to Octoberfest  3



그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구경삼아 고개를 360도로 빙 돌려보니, 어느 덧 넓은 홀은 사람들로 거의 들어차 있었다. 나는 이미리의 사진기를 빼앗은 후 과감하게 의자에 올라가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며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고,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도수 높은 맥주 탓에 취기는 오를 대로 오를 상태였다. 덕분에 기분은 최고였다. 나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이란 게 원래 이런 것 아니던가.

자세히 보니 주변 곳곳에는 19금 ‘에로영화’가 별다른 제지 없이 여기저기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그동안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는 연인들을 유럽 곳곳에서 목격해 내성이 생겼음에도 독일인은 차원이 달랐다. 확실히 강했다! 한 손엔 맥주를, 한 손엔 여자의 가슴을 쥐고 ‘브라보!’를 외치는 애정 행각은 어찌나 강렬하던지. 키스는 또 얼마나 노골적이던지. 나는 속으로 은근히 그 남자의 박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지만, 이미리는 그 모습이 언짢은지 “역시 마초의 나라군.”이라고 투덜대며 나를 얼른 자리로 끌어내렸다.

우리 바로 옆자리에는 아까부터 이런 우리를 무표정한 시선으로 흘낏흘낏 쳐다보던 한 노부부가 있었다. 수수한 청자켓을 입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는데, 그들은 한 시간 넘도록 1000cc짜리 맥주 2개만 시켜놓고 시종일관 한 마디도 없이 ‘화면 고정 상태’로 앉아있었다. 나는 젊은 우리만 안주를 먹는 게 마음에 걸려 계속 신경이 쓰이는 상황이었다. 그러기를 한참, 갑자기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보니 그것은 초코과자였다. 할머니가 과자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드시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순간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눈치를 주며 강하게 제지하는 게 아닌가. 할머니는 남편의 뜻에 따라 주춤하더니, 식탁 아래에 과자를 두고 하나씩 몰래 꺼내 드셨다. 그들을 예의 주시하던 남편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저 노부부 말이야. 동독 출신이 아닐까?”

“독일이 통일된 지 20년이나 지났는데?”

“그렇긴 한데, 동독 출신 중에는 통일 후 가난해진 사람이 많대.”

그런 것일까? 정말 저분들이 동독 출신일까? 뮌헨은 서독에 속해있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나는 문득,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통일이 그들에게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 그들의 삶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나는 돌아가서 동독에 대해 공부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삽시간에 늘어났다. 무대에서는 악사들이 독일 전통 가요를 연주하며 합창을 유도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동무를 하고 전통가요와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부르는 모습은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와 맞먹는 에너지를 내뿜었다. 어느 부스를 들어가든 이런 광경은 반복되었고, 그 무리에 끼지 못한 나와 남편은 영락없이 이방인의 꼴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옥토버페스트는 명백한 유럽인만의 축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600만 명의 관광객들 중 바이에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3/4이이며, 독일출신은 전체의 85%라고 한다. 남편의 말대로 옥토버페스트는 유럽인이 한자리에 모여 맥주를 마시는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무리에 끼지 못하는 게 서러울 만큼, 그들의 웃고 떠드는 광경은 참으로 행복해보였다. 옥토버페스트는 행복하자고 작정한 사람들의 소풍이며, 놀이터이고, 강제성 없는 단합대회임이 분명했다.

우리는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이 축제에 동참하게 된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기로 했다. 이곳에 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생중계 할 생각을 하니, 어깨가 들썩이기도 했다. 우리는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중앙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차 시간에 여유가 있었던 우리는 아침에 본 젊은이들처럼 스타벅스의 한쪽 테이블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달콤한 토막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의 낮술과 강행군은 30대의 체력을 급속도로 지치게 했지만, 마실 만큼 마셨고, 원하는 대로 기분 좋게 취했으므로 후회는 없었다.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는 30분이나 연착했다. 뮌헨으로 올 때의 경험 때문에 침대차의 상태에 대해서는 사실 기대를 접고 있었다. 하지만 베네치아행 2인실 야간열차는 6인승 쿠셋과는 차원이 달랐다. 비록 1평밖에 안 되었지만, 깨끗한 세면대와 식탁도 있었다. 우리를 위한 식사도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둘 만의 공간을 다름 아닌 열차에서 누리게 된다는 사실에 들떴다. 그토록 시끄러웠던 기차소리조차 낭만적이게 들렸다. 칙, 칙, 열차바퀴의 속도와 함께 차창으로 흩어지는 풍경은 우리가 다름 아닌 ‘여행’을 왔음을 환기시켜주었다. 앞으로 아홉 시간 동안, 이 낭만열차는 우리를 태우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데려다줄 것이었다. 






옥토버페스트의 추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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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페스트의 추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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